Greenpeace 단계적 탈핵 캠페인
2017년 07월 20일

[재판참관기] 탈핵이 ‘나와 내 아이’의 이야기가 된 이유

“쓰리마일섬 핵발전소 사고가 난 1979년 겨울에 태어났고,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가 난 1986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했으며,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난 2011년에 임신과 출산을 했다”

고이나/ ‘560 국민소송단’ 117번째 원고

 

"의견 있습니다. 심사를 중단하십시오. 이게 표결해서 될 일입니까?
60년 동안 안전하다고 누가 얘기할 수 있습니까? 380만 명의 안전을 60년 동안 누가 책임집니까?
일단 해놓고 보자고, 전 세계가 아무도 하고 있지 않은 짓을 우리가 지금 한다고!"

2016년 6월 23일 오후 7시 제 57회 원자력안전위원회의에서 밀양 주민 이계삼 선생님이 신규 핵발전소 건설이 확정지어지는 상황에서 하신 말씀이다. 이어 밀양 할매가 호소하셨고, 두 분 모두 회의장에서 퇴장당하셨다.

오후 7시 25분 "전 하여튼 찬성합니다"라는 위원장의 발언으로 신고리 5, 6호기 건설허가가 났다. 처참한 심정으로 회의장을 나서는데 저 멀리 망연자실하게 앉아계신 아까 그 할매가 보였다. "할머니, 할머니.. 좀 쉬셔요. 이제는 저희가 열심히 할게요." 안아드리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씀드리고 나왔다.

신고리 5, 6호기 건설허가 과정이 충격이었는지 한동안 무의식으로 지내다가 정신을 차리고 뭐라도 해야겠다 싶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러던 중 8월에 그린피스에서 "신고리 5, 6호기 건설허가 취소소송 국민 소송단"을 모집한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오… 이거야 이거. 길이 아예 없지는 않구나”

그 당시 내가 원고로 참여한 월성 1호기 수명연장 취소소송이 8번째 재판을 앞두고 있었기에 그린피스에서 진행하는 소송 소식이 가뭄 속 단비처럼 반가웠다. 신청서를 작성하고, 식구 셋이 모여 앉아 위임장을 쓰고, 사진을 찍어 보냈고 그렇게 우리는 또 한번 원안위와 법정 공방을 시작했다.

탈핵을 향한 나의 여정의 시작

탈핵을 향한 나의 여정은 2013년 가을부터였다. 후쿠시마 사고로 방사능의 위험성을 익히 알고 있던 터라 내 아이 먹거리에 특별히 신중을 기했었는데, 방사능이 대체 어떤 것이기에 피해야 하는지 알아보다가 ‘핵발전소’까지 가게 되었다. 도대체 발전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기에 사람 입에 들어가는 것까지 조심해야 하나 싶어 한 달 정도 핵발전소와 방사능에 대해 공부했다. 그리고 이 위험성을 보다 많은 사람들, 특히 나같이 어린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에게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으로 블로그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종종 관련 주제의 기자회견과 토론회 소식도 접하게 되었는데, 밖으로 나가기엔 아이가 많이 어렸기에 세 돌만 지나면 외부활동을 해야겠다 마음을 먹고, 온라인에서 열심히 핵발전소의 위험에 대해 알렸다.

그렇게 지내다 세 돌이 지난 2015년 1월, 한창 논쟁중이었던 월성 1호기 수명연장 문제를 접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나는 내 아이와 함께 탈핵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그 후로 수많은 기자회견, 토론회, 세미나 등 핵발전소나 방사능과 관계된 현장을 찾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외교부 앞에서 아이와 둘이 '1인 시위'를 했다.

처음엔 서울에서만 활동하다가 같은 해 가을, 세 차례에 걸쳐 영덕에 내려가 영덕 핵발전소 건설 찬반 주민투표를 도왔고, 여건이 되는 한 경주, 부산, 울산 등 탈핵의 현장에서도 마음을 모았다. 그리고 늘 내 옆엔 내 아이도 있었다. 그렇게 나는 최고의 파트너인 내 아이와 신고리 5, 6호기 건설허가 취소 소송에도 함께 하게 되었다.

반갑고도 값진 첫 재판

그렇게 첫 재판 날짜가 다가오길 기다리던 중에 신고리 5, 6호기 건설중단을 공론화위원회와 시민배심원단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정부의 발표가 났다. 그리고 바로 뒤이어서 6월 29일에 첫 재판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만일 재판 과정에서 건설이 불법적이라는 것이 확인되면 그 무엇보다 결정적인 판단이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재판이 더욱 기대됐다. 과연 재판부에서는 소송을 어떻게 볼지, 떨리는 마음으로 첫 재판에 참석했다.

재판에 앞서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기자회견과 퍼포먼스가 있었다. 첫 재판인 만큼 많은 분들이 오셨고, 이런 열정과 정성이 모인다면 향후 좋은 결과로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겼다. 이번 재판을 맡으신 두 변호사님은 존경하고 또 신뢰하는 분들이라 변호사님의 말씀에 더욱 힘이 났고, 3월에 그린피스에서 진행한 ‘국민소송단 만남의 자리’에서 뵌 분들도 계셔서 무척 반갑고 감격스러웠다.

법정은 가득 찼고, 양측의 변론이 오갔다. 그런데 피고 측 변론의 대부분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이 사건에 대해 제대로 알고있는 것이 아니라 표면적으로만 알고 있는 데다가, 타당하지 않은 이유들을 들면서 무조건 원전이 안전하다고 우기는 모습이었다.

반면에 담당 판사는 이 사건에 대해 많이 알아보고 오셨는지 양측 변론을 차분히 끝까지 다 들으시고, 이해하시고 그에 맞는 반응을 보이셨다. 판사님이 상당히 검토를 많이 하고 오셨다는 인상을 받았고, 쟁점을 조목조목 정리해주시는 모습에 안도하는 마음이 들었다.

사실, 두 차례(56, 57회)에 걸쳐 논의된 신고리 5, 6호기 건설 허가 원안위 회의록만 보더라도 얼마나 그 결정이 비합리적이었는지, 또 이런 지난한 싸움조차 필요 없을 정도로 졸속이었는지 드러날텐데. 그럼에도 신고리 5, 6호기 건설허가 결정이 났기 때문에, 이 재판에서 최선을 다해 승소해서 건설허가가 취소되었으면 좋겠다.

모두가 대한민국이라는 한 배를 탔기에

지금 대한민국의 뜨거운 감자가 된 신고리 5, 6호기 건설 찬반 논쟁은 우리나라가 탈원전 국가로 가는 시발점이 될 수 있는 중요한 사안이다. 찬성 혹은 반대를 하는 사람들 모두가 대한민국이라는 한배를 탄 국민이기에 서로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보다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무조건 청와대와 국회에만 그 책임을 물을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가 함께 이루어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반 국민이 대한민국 핵발전소의 과거와 현재 모습을 알아야 하고, 그 정보를 통해 국민이 직접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선적으로 신고리 5, 6호기 건설에 관심을 갖고 원고로 참여한 ‘560 국민소송단’이 소송 및 원전에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보다 많은 국민에게 전하고 이해를 도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월성 1호기 수명연장 취소소송에서도 열두 차례의 재판에 한 번도 빠짐없이 참석했었는데, 이번 신고리 5, 6호기 건설허가 취소소송에서도 가능한 한 모든 재판에 참석할 생각이다. 법정에 앉아있으면 소송인으로서 권리를 행사하는 듯한 뿌듯함과 나의 소송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가 하는 기쁨도 느낄 수 있다. 그 느낌을 더 많은 분들과 현장에서 함께 느끼고 싶다.

소송에 참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정말 큰 일이지만 그저 참여로 끝내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한다면, 그 노력과 정성들이 모여 우리 소송단이 바라는 미래가 생각보다 빨리 다가오지 않을까 하는 행복한 상상을 해본다.

글: 고이나/ ‘560 국민소송단’ 117번째 원고

9월 28일 세 번째 재판에 함께 해주세요!

참여하기


목록으로